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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Money]아케고스 사태: '월가의 한국계 인싸' 불장난에 금융시장 긴장

privatelab 2021. 3. 30. 15:44

기사입력 2021.03.30. 오전 8:41 최종수정 2021.03.30. 오전 10:01


재앙의 전조인가. 한국계인 빌 황(황성국)의 아케고스캐피털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사태에 미국 월가가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아케고스가 증거금을 채우지 못해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 크레디트스위스, 노무라 등이 강제로 처분한 주식은 300억 달러(약 339000억원)에 이른다.

강제 처분은 지난 주말인 26일 골드먼삭스 등이 바이두 등 미국에 상장된 중국 주식을 중심으로 블록 트레이딩을 일으키면서 본격화했다. 월요일인 29일까지 이어졌다.

강제 처분은 투자자가 증권사 등에서 돈을 빌리며 담보로 제시한 주식 등의 가치가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졌을 때 주로 이뤄진다. 증권사는 일단 전화를 걸어 담보가치가 부족하니 벌충하라고 요구한다(마진콜). 해당 투자자가 마진콜에 응하지 못하면 증권사는 기존 담보 주식을 처분한다.

골드만삭스 등은 시장 충격을 고려해 블록트레이딩 방식으로 아케고스 주식을 팔아치웠다. 사전에 매력적인 가격을 제시하며 사는 쪽을 물색해 대량으로 자산을 넘기는 방식이다.

 

역사속 두려움 소환

 

마진콜과 주식 처분은 월가 사람들에겐 트라우마나 마찬가지다. 대공황의 발단이 된 1929 10월 주가 폭락 사태 등이 대부분 마진콜 사태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금융투기의 역사』를 쓴 에드워드 챈슬러는 몇 년 전 기자와 통화에서 “기억이 오래돼 유전자처럼 변하는 바람에 마진콜 사태가 발생하면 월가 사람들은 일제히 파국이란 말을 떠올리다”고 말했다.

그런데 블록트레이딩 사태의 원인이 드러난 29일 뉴욕 증시는 패닉에 빠지지는 않았다. 다우지수는 0.3% 정도 올랐다. 나스닥은 0.6% 정도 떨어졌다. 이날 시황만을 보면 ‘마진콜 사태=증시 패닉’이란 월가 사람들의 트라우마와는 다른 모습이다.

 

뉴욕증시 자금흐름 위축 가능성

 

그러나 두려움 자체가 좀체 가시지 않는다. 아케고스와 거래를 한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 크레디트스위스, 노무라 주가가 추락했다. 올해 순이익이 마진콜 사태 때문에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게다가 이른바 ‘아케고스바스킷(관련주)’에 들어있는 바이두, 비아콤, 로켓고스 등의 주가가 평균 35% 떨어졌다.

 

바이두 등 아케고스가 보유한 주식(아케고스 바스킷) 가치가 추락했다

월가 투자은행은 몸조심 모드에 들어갔다. 자신들이 주식을 담보 잡고 빌려준 돈이 얼마나 위험한지 재평가 작업을 시작했다. 증시 자금의 공급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주에 과도한 베팅

 

무엇보다 월가 사람들은 옛 타이거펀드 출신인 황씨가 벌인 베팅이 현재 금융 시스템 취약점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바짝 긴장하고 있다.

뉴욕증시에서 어떤 투자자가 개별 종목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면 공시해야 한다. 그런데 황씨는 개별종목 스와프 거래 등을 일으켜 공시하지 않고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한 마디로 황씨가 현재 규정의 허점을 이용한 셈이다.

황씨가 주로 사들인 주식은 미 증시에 상장된 중국 주식이었다. 한 지역의 주식을 지나치게 많이 보유하는 것 자체가 분산투자와는 거리가 멀다. 아니나 다를까. 미·중 갈등이 다시 악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비아콤 등이 떨어졌다.

 

'월가 인싸'의 불장난에 더욱 긴장

 

황씨는줄리안 로버트슨의 타이거펀드 출신이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BI) 티머니 오브라이언은 “황씨는 월가의 인사이더”라고 묘사했다. 그는 홍콩에서 내부자 거래를 하다 들통나 2014년부터 4년 동안 주식거래를 할 수 없었다.

 

빌 황의 스승인 줄리안 로버트슨. 블룸버그

황씨가 ‘월가의 인싸’란 점이 1998년 롱텀캐피털(LTCM) 사태를 소환했다. LTCM 관련자들이 전형적인 월가 인싸였다. 사태에 연루된 투자은행도 아케고스 사태와 마찬가지로 메이저급이었다.

아케고스 사태가 월가 트라우마를 소환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금융시장 속성대로 다른 플레이어들은 골드먼삭스 등이 내던지는 황씨의 주식을 싸게 사들이는 현 상황을 즐기고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