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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법인세, 매출 발생국서 걷자”... 미국發 세금전쟁 시작됐다

privatelab 2021. 4. 10. 10:00

기사입력 2021.04.09. 오후 10:51 최종수정 2021.04.09. 오후 11:02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꺼내든 글로벌 법인세 증세안의 윤곽이 드러났다. 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8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세 관련 회의에서 다국적기업의 법인세 증세 방안을 담은 문서를 우리나라를 포함해 139국에 전달했다.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다국적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해 글로벌한 최저 법인세율(법인세율 하한)을 설정하고, 다국적기업의 경우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법인세를 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여러 차례 “정부가 앞장서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4400조원이 넘는 막대한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 같은 정부 주도 경기 부양에 들어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법인세 세율 인상(21%→28%) 등과 함께 다국적기업에 대한 증세를 추진하는 것이다.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세금 내라


다국적기업에 대한 증세 방안은 바이든 대통령의 법인세 인상 발표 이후 잇달아 나왔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5일 한 강연에서 “세계적으로 법인세 최저선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고, 8일에는 다국적기업의 경우 제품이나 서비스 판매로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세금을 내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다국적기업에 대한 증세 방안은 애플, 구글, 넷플릭스 등 미국의 다국적기업이 아일랜드처럼 세율이 낮은 나라나 조세 회피 지역에 설립한 법인을 이용해 법인세를 줄이고 있는 관행을 더 이상 묵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매출이 발생하는 국가가 법인세를 징수하도록 하는 방안(매출 연동 법인세)은 미국에 특히 유리하다. 기업이 돈을 벌어간 나라에 세금을 내도록 하면, 미국·유럽연합 등 소비 규모가 큰 국가들이 걷는 세금이 증가하게 된다. 법인세율 조정이 미 의회 통과 등 국내 정치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반면, 이 방안은 국제사회의 합의만 있으면 비교적 간단히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미국은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이 개편안의 대상이 될 기업을 매출 기준 글로벌 100대 기업 수준으로 한정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21%로 정하자”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제안한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은 21%가 유력하다고 알려졌다. 만약 아일랜드 등의 세율이 이 수준으로 높아지면 다국적기업들은 법인 설립과 유지 등의 비용을 치르면서 굳이 이 나라들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징수할 세금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파이낸셜타임스가 ‘바닥을 향한 경쟁’이라고 부를 정도로 세계 각국은 지난 20년간 앞다퉈 법인세를 인하해 왔다. ‘저렴한 세금’을 노리는 다국적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였다. OECD에 따르면, 회원국의 평균 법인세율은 2000년 약 30%에서 23%로 낮아져 있다. 아일랜드 법인세는 13%밖에 되지 않는다. 골드만삭스는 바이든이 밀어붙이는 법인세 증세가 이뤄지면 S&P500 지수에 편입된 기업의 순이익이 9% 정도 줄어든다고 추정하고 있다.

정부 “미국의 제안 지켜보겠다”


수출 기업이 많은 한국은 미국의 이런 조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국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내용이 더 나오고 세계 각국이 논의를 진행하기 전까지는 어떤 영향이 있을지 판단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진행 과정을 예의 주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법인세율이 최고 27.5%로 높은 편이어서 최저 법인세율을 별도로 조정할 필요는 없을 전망이다.

삼성·LG·현대차 등 다국적 수출 기업들은 글로벌 법인세 부과 방식이 어떻게 확정되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전반적인 증세를 추진 중이기 때문에 법인세 부담은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김신영 기자 sky@chosun.com] [정석우 기자 swj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