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올라선 中면세굴기...."코로나19보다 무서운 중국"
기사입력 2021.04.27. 오후 3:18
한국 면세점이 코로나19(COVID-19)로 휘청거리는 사이 중국 면세점이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 하에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중국 면세업체가 세계 면세점 시장에서 1위에 오르는 등 중국의 면세굴기가 가속화하면서 한국 면세업계에서는 "걱정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영국의 면세전문지 무디데이빗리포트에 따르면 2020년 세계 면세점 순위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1년 만에 크게 요동쳤다. 2019년까지만해도 세계 면세점 순위 '톱3'는 스위스와 한국 면세점이 차지했지만, 2020년엔 중국이 선두로 올라섰다. 중국 국영기업 중국면세품그룹(CDFG)이 2020년 전세계 매출 1위 면세점의 자리를 차지했다.
반면 2019년 1위였던 스위스 듀프리 그룹은 4위로 밀려났다. 롯데면세점은 2019년에 이어 2020년에도 2위를, 신라면세점은 2019년에 이어 2020년에도 3위를 기록하며 제자리 걸음을 했다.
무디데이빗리포트는 롯데와 신라가 순위를 수성한 데 대해 중국 따이궁(代工·대리구매상)의 지속적 구매와 장기 재고 면세품 내수 판매 허용 등 한국 정부의 지원 정책, e커머스 확대 노력 등에 힘입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또 2014년 이래 1위 자리를 지켰던 듀프리 그룹이 4위로 주저앉은 건 듀프리가 주로 국제공항에 매장을 두고 있어 매출에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국내 면세업계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세계 면세 선두주자로서 위치를 확고히 한 데 대해 "선방했다"고 자평하면서도 중국 면세업계의 빠른 성장에 대해선 "두렵다"는 반응을 내놨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정부가 고사 직전인 면세업계에 다양한 지원책을 준 게 큰 도움이 돼 순위를 수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부는 면세 업계에 장기 재고품 내수 판매, 무착륙 관광비행 면세 구입 허용, 면세점 특허수수료 감경 등의 지원책을 줬다. 그는 이어 "중국 면세점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국내 면세업의 경쟁력이 떨어질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중국은 한국 등으로 외화가 반출되는 걸 막기 위해 2011년 중국 최남단 하이난(海南省)을 내국인 면세 특구로 지정하고 육성해왔는데 코로나19 발발 후 더욱 전폭적인 '면세굴기' 지원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 4월 중국 당국은 하이난을 방문한 내국인이 본토로 복귀한 후 180일간 온라인으로 면세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연달아 2020년 7월엔 하이난에서의 연간 1인당 면세 쇼핑 한도를 3만 위안(약 515만원)에서 10만 위안(약 1715만원)으로 늘렸고, 쇼핑 횟수 제한도 없앴다. 면세상품 품목도 38개에서 45개로 늘렸다. 중국 당국의 '면세굴기 효과'는 톡톡했다. 2020년 세계 면세점 1위에 오른 CDFG는 하이난에서만 매출의 절반을 올렸다. 하이난 면세점 7곳 중 4곳이 CDFG 소유다.
중국 면세점 성장은 국내 면세업계에 위협이다. 그동안 국내 면세업계는 사실상 중국 따이궁들이 먹여살려왔다. 코로나19 확산 전, 따이궁은 시내면세점 매출의 70%, 공항을 포함한 면세점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일반 관광객 매출이 급락한 현재 따이궁 매출 비중은 70~90%까지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이들이 더 이상 한국을 찾지 않고 중국 내수 시장을 찾는다면 국내 면세점은 매출 타격을 그대로 입을 수밖에 없다. 한태일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중국 면세 시장 규모가 성장한다는 건 보수적으로 봐도 70%의 소비가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므로 국내 면세사업에 부정적"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CDFG의 성장세가 코로나19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는 단순히 매출 타격을 넘어 자체 경쟁력을 잃을까 걱정도 하고 있다. 면세점은 '규모의 경제'가 중요해, 직매입시 많이 구입해와야만 더 저렴하게 팔 수 있다. 한국 면세시장은 따이궁들과 국제 관광객, 국내 관광객 등의 높은 수요 덕에 수년째 1위를 지키고 있어서 롯데, 신라, 신세계, 현대백화점면세점 등 국내 면세 업체들은 그동안 좋은 브랜드를 유치하고 가격경쟁력 있는 상품을 입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일 중국 면세시장이 한국 면세시장보다 더 커져서 협상력이 한국을 압도하게 된다면 자체 경쟁력을 잃어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이 활성화되더라도 더 이상 한국 면세점들을 찾지 않을 수 있단 우려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600달러에 멈춰 있는 '내국인 면세 한도 인상'이나, 2~3년 뒤 해외출국을 가정하고 면세품을 구입하도록 하는 '면세한도 가불제' 등 선제적이고 파격적인 지원책이 절실하다"며 "코로나19가 끝나고 해외여행이 정상화될 때까지 경쟁력을 지킬 수 있도록 면세업체들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은 기자 jennylee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