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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단어 ‘인플레이션’의 귀환?
    Investment 2021. 4. 11. 21:47

    기사입력 2021.04.11. 오전 8:36 최종수정 2021.04.11. 오전 8:4


    2000년대 들어 경제학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다시 찾아올까.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가 예상보다 강하게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올해 6.5% 성장하며 45년 만에 중국 성장률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빠른 코로나19 백신 접종 속도도 이 같은 경기 회복 기대감을 뒷받침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021년 말에는 위기 이전 수준을 훨씬 웃돌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도 경기 침체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반기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3월 1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2%를 상회하더라도 선제적 통화 긴축을 하지 않겠다”며 일정 수준까지는 용인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인플레이션의 귀환?


    그동안 인플레이션은 사라진 유물 취급을 받았다. 시중에 통화량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인플레이션이 발생해야 한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규모의 유동성이 공급됐음에도 물가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이 사라진 것에 대한 해석은 분분했다. 그중 온라인 쇼핑업체의 성장으로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전보다 사람들은 싼값에 물건을 사게 되자 인플레이션 압력이 낮아졌다는 이른바 ‘아마존 효과’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한국은행은 2018년 보고서를 통해 국내 온라인 상품 판매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하면 같은 해 근원 인플레이션율(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은 0.02~0.03%포인트 떨어진다는 분석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전 세계 공산품 가격을 끌어내렸다는 해석도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의 성장률이 낮아진 점도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췄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실질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을 밑돌았다. 여기에 자동화와 국제 분업체제의 확산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보다 오히려 물가가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근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진단한다.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시차의 문제였을 뿐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유동성이 공급됐기 때문에 물가를 자극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경기 침체 장기화와 디플레이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했던 정책들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본 것이다. 특히 1조9000억달러(약 2139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안 입법작업을 끝낸 바이든 행정부가 이번에는 3조달러(약 3381조원)에 달하는 인프라 패키지를 준비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인플레이션 반기는 정부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각국 정부 입장에서도 인플레이션은 나쁘지 않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주요국이 저마다 경쟁적으로 돈을 풀고 저금리를 유지하면서 정부 부채는 물론 민간 부채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인플레이션은 부채를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급증했던 영국의 정부 부채도 파운드화 평가절하와 인플레이션을 통해 해결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영국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59%에 달했지만 1971년에 56.3%까지 낮아졌다. 인플레이션으로 GDP 규모 자체가 커지면서 빚이 줄어들게 된 셈이다.

    물가안정보다 고용 회복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점도 중앙은행이 섣불리 통화 긴축으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뒷받침한다. 실제 코로나19로 비대면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경기 회복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여전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 경제 수장들도 줄곧 경기 회복의 척도로 고용을 언급했다.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해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일터로 복귀시키는 것이 목표다. 우리는 이것이 완료될 때까지 목표를 고수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2월에는 “지난해 2월 이후 노동시장을 떠난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1월 실업률은 10%에 가깝다”며 고용지표의 일시적인 개선으로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점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인플레이션을 바라보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미국의 나 홀로 성장에 기댄 만큼 신흥국과의 격차가 더 확대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지난 3월 30일(현지시간) 진행된 화상 연설에서 “2013년의 긴축발작 때와 유사하게 미국의 금리 상승은 대외 금융 의존도가 높고 부채비율이 높아진 신흥국에 커다란 도전이 될 것”이라며 “이들 국가는 회복이 느린 관광업에 주로 의존해 압박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으로의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세는 저조한 모습이다. 2020년 4월 이후 신흥국으로 유입된 자금의 70% 이상이 중국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에서 외국인 증권투자자금 유출 강도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웃돌고 있다. 강영숙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2021년 2월까지 신흥국에서 유출된 금액의 69%만 재유입되는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으로 자금이 모이면서 2010년에는 남유럽, 2013년에는 브라질과 터키가 어려움에 직면했다”며 “불균형한 형태의 회복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에게는 미국의 빠른 회복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지난해 늘어난 빚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집값 상승과 주식 투자 붐으로 한국의 가계부채는 1726조원으로 1년 전보다 7.9% 늘었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175.5%로 2019년 말보다 13.2%포인트 높아졌다. 소득과 비교해 채무 부담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에서 재정지원 대신 이자지원 등 금융지원에 치중했던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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