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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 인터뷰-진대제>“반도체 전쟁은 ‘초격차 유지’ 기회… 美의 세계전략에 동참해야”Investment 2021. 4. 27. 23:05
기사입력 2021.04.27. 오전 10:41
[인터뷰=이민종 산업부장]
전자·정보기술(IT) 산업의 핵심 부품으로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 중국 등 열강의 패권 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흔히 1947년 12월 미국의 벨 연구소에서 탄생한 트랜지스터를 반도체의 원조로 꼽는다. 하지만 최근의 주목도는 20세기를 뒤바꿀 제품이라는 당시의 큰 화제를 능가한다. 반도체는 국가 안보 물자로 격상됐다. 당장 내로라하는 인텔, TSMC, 엔비디아 등 거대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가 러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K-반도체 산업의 긴장 역시 한층 커지고 있다. 정부도 뒤늦게야 ‘종합반도체 강국’ 도약 대책을 준비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처에서 자칫 한눈을 팔면 순식간에 패자로 전락할 수 있는 엄중한 경고등이 요란하다. 한쪽도 자극하지 않으면서 실익을 챙길 수 있는 정교한 전략과 접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 들린다.
세계 최초로 16M D램을 개발한 엔지니어이자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인 진대제(70) 전 정보통신부 장관(전 삼성전자 대표이사)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진 전 장관은 문화일보와의 현안인터뷰에서 “지금 상황을 초격차 유지를 위한 호기로 받아들이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이 꺾일 때까지 반도체로 계속 시비를 걸 것”이라고 사태가 장기화할 것임을 예고한 후 “우리도 미국의 세계전략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진 전 장관을 만나 반도체 대전의 배경과 전망, K-반도체의 활로를 포함한 전략과 대응 방향을 들었다. 진 전 장관은 예상보다 훨씬 강도 높고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했다. 그만큼 반도체 산업 전반의 전략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새로운 반도체 전쟁이 시작됐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재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배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파생한 것이다. 대중 패권전쟁의 핵심을 반도체로 설정한 데서 비롯됐다. 중국은 제조대국 2025, 신실크로드 전략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부품·소재 공급이나 금융지원을 통해 세계 제조업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를 그대로 두고 보지 않겠다는 미국의 전략에 따라 무역마찰이 발생했는데 미국이 분석한 결과, 중국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급소, 아킬레스건이 반도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를 사실상 전략물자로 규정해 차단한 거나 마찬가지다. 패권 전쟁은 중국이 꺾일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중국은 2015 반도체 굴기(堀起) 선언에서 알 수 있듯 과거부터 반도체 육성을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1990년대부터 미국으로부터 통신장비 독립, 컴퓨터 소프트웨어 운영체제(OS) 독립, 마이크로프로세서 독립이란 3대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해왔다. 1999년 당시 반도체 1기가 D램, 1기가헤르츠(㎓) 마이크로프로세서(알파칩)를 내가 처음으로 만들었다. 당시 인텔이 펜티엄 250메가헤르츠(㎒)였다. 당시 삼성전자가 디지털 이큅먼트사의 알파칩을 파운드리로 제조해 줬는데 1만 달러에 팔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에는 못 팔게 했다. 최근까지도 중국이 한국을 부러워하는 게 반도체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다. OLED는 거의 다 따라잡았는데 반도체는 아직도 안 된다. 중국이 절치부심하는 게 반도체다. 반도체가 안 되는데 전자제품의 뭘 만들 수 있겠나.”
―현 상황을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은 이런 흐름에서인가.
“반도체 위기?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중국 모두 투자해 달라고 할 정도로 귀하신 몸이 되지 않았나. 미국이 중국을 견제해 중국이 추월하려 하는 것도 4∼5년 늦어지게 됐다. 이를 기회로 삼아 초격차를 유지하는 데 필사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오히려 우리도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에 대한 견제에 나서야 한다. 솔직히 우리가 대중 관계를 잘한다고 해서 중국이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을 풀어주겠나. 어정쩡한 접근과 자세, 전략 때문에 속국이니 조공이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우리도 행동으로 보여주고 필요할 때 실속을 챙길 필요가 있다. 중국은 우리 반도체를 구매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다.”
―정부가 반도체 1위 수성을 하겠다고 전략을 제시했는데,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지금 반도체 수급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정부가 뭘 도와준 게 있었는가. 정부는 업계 전반적인 생태계 발전을 도와줘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반도체를 만들고 나면 얇게 자르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 기계를 한미반도체가 만든다. 전 세계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반도체 전체를 두고 보면 우리가 잘하는 것도 있고 해외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스캐너나 에칭장비도 있다. 우리가 메모리반도체를 잘하고 있지만 이에 필요한 소재, 장비, 소프트웨어 기술은 삼성이나 SK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일본이 독점하면서 수출규제를 발동해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다가 겨우 극복한 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 소재가 주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이런 취약지대를 보완해 주고 국제분업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계설정을 잘해야 한다.”
―반도체 투자와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희망하는 목소리가 높다. 어떻게 생각하나.
“아무래도 전문경영인은 (투자 결정 등에) 한계가 있다. 총수가 복귀하면 회사도 안정적인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특히 큰 의사결정을 하는 데는 그룹 총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고 이건희 회장 때 8인치 웨이퍼에 당시로써도 어마어마한 수조 원대 투자를 결정했다. 단기 실적에 대한 압박을 견뎌야 한다. 그러니 하기 싫어하고 잘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총수는 기업의 50년, 100년 후 미래를 내다보고 결정한다. 중장기적 투자는 총수가 결정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메모리반도체에 비해 시스템 반도체가 취약하다고 하는데.
“모두 다 잘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메모리반도체를 잘하는 것만 해도 축복이다. 다른 나라, 다른 기업이 비메모리를 잘하는 거까지 욕심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파운드리의 경우 우리 기술과 비슷한 부문도 있고 시장이 계속 성장하니 비메모리 분야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130조 원을 삼성이 투자한다고 했던 것이다. 물론 대만 TSMC와 차이가 있다. TSMC는 남의 것만 만들어주지만, 삼성은 자기 것도 만들면서 남의 것도 만들어준다. 고객사인 퀄컴이나 엔비디아 등으로서는 삼성이 경쟁사가 되기 때문에 TSMC가 더 편할 것이다. 그래서 삼성은 파운드리 측면에서 TSMC만큼 많이 할 수가 없다. 너무 욕심부리면 안 된다는 것은 이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퀄컴의 비메모리반도체 디자이너 숫자만 해도 국내 반도체 디자이너 전체 수보다 많다. 국가적으로 다 덤벼들어도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 인력의 양적, 질적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반도체 기술이 워낙 앞서가기 때문에 학교에서 흉내 내고 만드는 것은 이미 포기한 상태다. 반도체는 반도체 회사에서 가르쳐야 한다. 학교에서 실험하는 것도 도움이 안 된다. 재료라든가 물리학, 수학, 금속 등 이런 기초과학 분야는 양성할 수 있겠지만, 공정과 설계기술 같은 실무는 학교에서 가르쳐줄 수 없다. 교수도 반도체를 모르는데 뭘 가르칠 수 있겠나.”
―혁신적인 개선 방안은 없을까. ‘반도체 인력 아카데미’를 설립하자는 업계 요청도 있었다.
“우선 사람들이 반도체에 관심을 두도록 환경부터 조성해 줘야 한다. 4차 산업혁명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지고 업 자체가 달라지는데 앞으로 월급을 제대로 받고 다닐 기업이 몇 개나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대학 교육정책과 프로그램을 창의성 위주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반도체 인력 아카데미는 대기업은 아니겠지만, 장비와 소재를 만드는 중소 반도체 기업에는 필요할 것이다. 반도체 생태계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진 전 장관은 정부가 반도체를 포함해 산업 전반의 측면에서 능동적 지원 역할이 미흡했음을 연신 아쉬워했다. 구체적으로 최근 출고식을 한 4.5세대 KF21 전투기에 드는 국산 부품이나 레이더에 포함되는 고속 연산 칩,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차량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은 왜 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도와주지 않는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국가 전체로 봐서 미·중 신냉전이 진행되는 점을 볼 때 분명히 우리에게는 위기다. 그러나 국가적 방향이 혼미하다. 앞이 보이질 않는다. 소형원자로 제작 등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원전은 만들지 않고 우리가 부가가치가 없어 중국에 휘둘리는 태양광 같은 것에 왜 매달리는지 모르겠다. 중소기업이 쓰러지고 중국에서 다시 베트남, 인도 등으로 값싼 노동력을 찾아 옮기다가 쓰러지는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제조업 공동화는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 임금은 비싸고 노동시장은 경직돼 있다. 국내에서 휴대전화, TV 등도 생산을 안 한 지 오래됐고 완성차도 얼마나, 언제까지 만들 수 있겠나. 국가경쟁력의 실추와 훼손을 보고 있자면,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왜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좌시하고만 있는가”라며 “과학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국민이 감동할 만한 산업적인 화두를 제시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리=이승주 기자'Investme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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